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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6 (20:50:33)
1.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0-22)

2.묵상하기

많은 경우 우리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한번 살아보라. 과연 이 땅에서 일관성이란 게 가능한가? 젊었을 때는 정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에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런가? 인간 자체가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의’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수네’이다. 원래 이 단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의’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공의가 강같이 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많이 못 배운 사람도, 많이 배운 사람도 모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문제는 그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의를 붙든다는 것은 ‘십자가의 의’를 붙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적용에 실패하고 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밤낮 사랑만 들고 나와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자비가 필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정의를 들고 나와서 상대를 정죄한다.

사람들에게 정의만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 사람들에게서 일관성을 기대하지 말라.

우리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죄인이며 전적인 무능자이다. 우리는 일관성 있게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대로 절대 못 사는 존재이다. 말이 자꾸 바뀐다고 하는데 말은 누구나 다 바뀐다. 어떤 사람이 정직하다고 하지만 100퍼센트 정직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뚜껑만 열어보면 다 똑같은 죄인이며 문제투성이이다. 그런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서로 용서하며 살아가야 한다. 품어주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달으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나와의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의를 붙들라.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자비와 사랑을 붙들라.
누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누가 나를 버리고 도망친다고 할지라도 그를 용서할 수 있을 만큼만 그에게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겠다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중요한 원리이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간단하지 않다.

가까운 사람이 나를 배신할 때 용서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를 악무는 것이 기독교인가? 아니다. 기독교를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이해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고달파진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는 의! 십자가를 붙들자!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는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자.
그러면 배신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떠나가더라도 상처받지 않는다.
교회가 왜 이 꼴이냐고 하는 사람, 교회에서 상처 입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이 관계의 원리를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전병욱, 강점으로 일하라)

3.오늘의 기도

하나님, 저의 노력과 공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붙들고 나아가겠습니다.
저의 자아는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드러내는 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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