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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14:13:52)
1.오늘의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편 91편 14,15절)

2.묵상하기

◈고난에 함몰된 사람은 하나님을 메마른 분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은 항상 옳고, 의롭고, 완벽하지만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저 높이 계신 분이시다.

멀리 계신 주께 그가 할 일은 ‘나이스’(nice)하게 보이는 일뿐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 ‘진심’은 보이지 않고, ‘나이스’하게 보이는 일에만 몰두한다. 가면만 쓰고 나타난다. 가면 쓴 모습이니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

하나님은 우리가 ‘의’를 들고 나오기보다는‘신뢰’를 들고 나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잘난 것, 잘한 것, 공로가 아니다. 그런 의는 하나님이 더 많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면 충분하다. 십자가의 의면 충분하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들고 나와야 한다.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자녀가 나이스하게만 보이려고 할 때, 부모의 마음은 더 아프다.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키운 딸이 있다. 결혼 후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혼 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그 고통을 어찌 아버지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그 딸은 아버지 앞에서 항상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나이스하게 보이려는 그 모습이 아버지를 더 슬프게 만든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딸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힘들면 힘든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나오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에서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의(義)를 가지고 왔는가? 그냥 아버지를 신뢰하고 왔다.

‘비록 내가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격이 없을지라도 아버지는 나를 품꾼의 하나로는 받아주실 거야. 버리지는 않으실 거야!’ 하는 신뢰를 붙들고 왔다. 그러자 아버지가 그를 반기며, 좋은 옷을 입혀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주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진실은 오직 ‘아픔’뿐이다. 믿음이 좋은 척, 센 척 하지 말라. 아프면 아프다고 외치라. “아파요. 너무 아파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를 구원해주세요!” 하고 울부짖으라. 거기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고난 중에 부르짖으라.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부르짖게 될 때, 비로소 생명의 교류가 일어난다. 문제없는 내가 아니다.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내 곁에서 아픈 나를 도와주신다. 그 하나님을 만나라. 그때 메마름이 사라지게 된다.

고난 가운데서 고고한 난초인 척하지 말고 자랑할 것 없는 잡초 본연의 모습으로 하늘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당신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전병욱, 잡초의 힘)


3.오늘의  기도
주님, 아버지를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버지 앞에 언제나 진실된 모습으로 무릎꿇겠습니다. 나의 상한 영혼을 돌봐주시는 주님, 언제나 신실하신 나의 아버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회복 받고 변화를 받아 쓰임 받는 자녀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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