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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222
2012.06.18 (06:30:53)

1.오늘의 말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로새서 1:20)

 

2.묵상하기

 

◈ 교인들이 저를 찾아와 신앙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밤에 죽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좋습니다.그렇다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의지하겠습니까?”
“글쎄요, 저는 늘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죄를 지었지요.”

“그렇다면 그 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
“글쎄요, 저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그 사실이 어떤 도움이 될까요?”
“글쎄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들을 밀어붙이고 연이어 질문을 던지며 따져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종류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 제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용서를 믿고 있으며, 용서의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성찬의 떡과 포도주의 의미, 그의 죽음과 피 흘림의 참된 의미를 보지 못합니다.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 안에 그리스도는 거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상당부분 구약시대 성도들의 수준에 살고 있는 것같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했지만 이들은 그분의 필요성 자체를 전혀 못 느끼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자유로워진 것은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하신 일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의 속죄, 즉, 십자가의 죽음과 찢기신 몸과 피 흘림을 찬양해야 합니다.

물론 제가 지금 이 시대에 지극히 인기 없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음을 아주 잘 압니다.
이 피의 신학을 비웃으면서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조롱으로 이 신학을 일축해 버립니다.
“구약의 피투성이 종교, 황소와 염소의 피에 젖은 종교, 그리스도의 피를 이야기하며 그것을 실체화하려는 모든 시도”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모양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부흥이 임한 교회들은 십자가를 자랑하며 그의 피를 내세웁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대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의 피를 힘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 10:19) 성령은 바로 이것을 높이십니다.
바로 이것을 증거하십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였습니까?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만인을 위해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중추이자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6)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우리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고후 5:21)

교회가 알고 있는 설교자 중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이것이 그가 내세우며 자랑했던 것이었습니다.

부흥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와 삶의 중심에 그분을 다시 모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부흥의 때에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뜨겁게 헌신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부흥은 교회와 삶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찬송하게 합니다.
그를 높이지 않는 기독교, 그를 위해 살지 않는 기독교, 그를 증거하며 살지 않는 기독교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부흥)

 

3.오늘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고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혹시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지도 않고, 그리스도를 높이지도 않고, 증거하지도 않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도께 뜨겁게 헌신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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