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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76
2014.07.28 (07:45:50)

1.오늘의 말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로새서 1장 20~22절)



2.묵상하기


내가 한국의 아픈 역사에 눈을 뜬 그 시기는 매우 위험한 시기였다. 일본의 만행에 대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주님께서 나를 불러 ‘일본에서 행하라’ 명하신 복음 사역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훨씬 더 위험했다.

왜냐하면 아메리칸드림과 내 인생에 대한 부모님의 꿈을 포기하는 것, 그 꿈을 위해 모든 것들을 버린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저버리는 것, 안락하고 부유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 어떤 한 나라를 위해서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 한국의 동포들과 심지어 내 가족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잔혹행위를 자행했던 한 나라를 위해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것의 타당성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서 한 사람의 죄인이기보다 한 사람의 성자(聖者)가 되어 있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의로워진 사람이기보다 내 자아의 공로로 의로워진 사람이 되어 있었으며, 내 죄로 인해 상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맹렬히 규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갈등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셨다.

‘너 또한 내 원수가 아니었느냐?’‘너 또한 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느냐?’ ‘너는 내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선한 일을 하였느냐?’ 


◈멍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추악하고 흉물스러운 내 죄를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인간들과 화해하심으로써 인간이 저지른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우리들,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의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골 1:22).

이런 진리를 떠올리자 하나님의 복음에 크게 놀라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활기가 마치 빛의 홍수 모양으로 내 어두운 영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순결한 피를 희생하여 내 죄에 대해 나를 정당하게 고발하고 징벌하실 수 있는 절대적이고 신령한 권리를 영원히 한쪽으로 치워놓으셨는데,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고발할 어떤 인간적 권리도 하나님께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내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발판으로 삼을 만한 나 자신의 ‘의’를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한국인이거나 압제자나 희생자, 그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위에만 설 수 있다.


◈의로운 인간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은총을 얻어낼 수 있는 인간의 선함도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능가할 수 없는 인간의 악함도 없다.

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나 압제받는 사람들 중에나 젊은이들 중에나 노인들 중에나 하나님의 은총을 요구할 만한 순전함도, 순결함도 전혀 없다. 세상의 압제자들과 노예를 삼는 자들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난들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덮지 못할 것은 없다.


그렇게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정신을 차린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내 원수라 칭했던 이들마저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을 원수라 부르는 대신 형제요 자매요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꼭 배워야 할 교훈이었다. 그런 화해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자질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화해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내가 죄인들 중에 괴수’라는 것을 개인적으로 자각하는 것이다(딤전 1:15 참조). 하나님께서 지금 죄인들을 받아주고 계신 것은 화해의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 널리 전하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해의 메시지는 바로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이클 오)


3.오늘의  기도


주님, 누구를 탓하기 앞서 내 자신의 죄를 돌아보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 자신의 '의'로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원수를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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