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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549
2014.11.05 (08:22:50)

1.오늘의 말씀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장 41절)


2.묵상하기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크게 그리고 아주 귀히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저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죄에 대해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1-25).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소름이 돋는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까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아파하고 절규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타인의 죄에 예민하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둔감하다. 타인의 죄에 대하여 철저하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관대하다. 남의 눈의 티에는 발끈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하여도 타인이 잘못하였을 때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흥분한다. 똑같은 잘못을 자신이 하였을 때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느냐?”며 자신을 감싼다.


그러나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았던 사람은 이게 바뀌어져 있다.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철저하다. 똑같은 잘못과 실수를 하여도 타인이 잘못하였을 때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느냐?”며 타인을 감싼다. 그러나 똑같은 잘못을 자신이 하였을 때는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느냐?”면서 펄펄 뛴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좋아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시인의 소원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 그것을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이라고 표현하였다.


바람을 표현할 때 세 가지 표현이 가능하다. ‘잎새에 부는 바람’, ‘잎새에 떠는 바람’, ‘잎새에 이는 바람’. 잎새에 태풍이 불어도 깨닫지 못하고 부인하는 게 보통 우리들의 모습인데 윤동주 시인은 “잎새에 떠는 바람”도 아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다. 

타인의 죄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다. 사회적인 악과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 옳은 일이고 좋은 일이다. 의분은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그러셨다.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는 분노하셨다. 

그러나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애통은 그와 같은 분노와 다르다. 분노는 타인과 세상의 불의에 대한 것이고, 애통은 자신의 죄와 허물과 불의에 대한 것이다. 


의분과 공분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비겁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아파하고 애통할 줄 모르는 사람의 의분과 공분은 힘이 없다.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와 같이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하여 둔감하면서도 의분과 공분을 잘 느끼는 사람은 자칫 자신이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심판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 할 것 없다. 그건 내가 제일 많이 빠졌던 함정과 착각이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런 나의 폐부를 찌른다. 다른 복도 그렇지만, 이 복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 주여, 저에게도 애통할 줄 아는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방식, 김동호)


3.오늘의 기도


주님, 자신의 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 되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애쓰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탓하기보다는 긍휼히 여기며 기도하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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