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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0 (22:57:13)

1.오늘의 말씀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 잠언 2장 6절


2.묵상하기


우리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의 두뇌와 학문으로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런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학자와 빛을 받은 사상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학자는 대개의 경우 빛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학자의 일은 정보를 체계화하는 것이다. 그의 일은 정신적, 내면적 조명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학자가 신적 지혜의 세례를 받으면 지혜의 조명을 받는 사상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위대한 학자들 중에는 열심히 노력해서 조명을 받은 사람들도 일부 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예를 들면, 모세는 위대한 학자였다. 그는 바로의 딸의 아들로서 궁정에서 양육되었고,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사명을 그에게 맡기시기 전에 그를 ‘불타는 떨기나무’로 인도하셔서 조명해주셨다.


그래야 그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는 애굽의 학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조명을 허락하신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을 그에게 맡기셨다. 요컨대, 모세는 신적 지혜의 영감을 체험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사용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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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또 다른 학자는 바울이다. 그는 회심 후 아라비아의 모처에서 3년 간 은신해 있었다. 아라비아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얻으려고 힘썼다. 아라비아에서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전에 없던 것이 있었다. 정리해서 말할 것 같으면, 본래 그는 학자였지만 거기 머물지 않고 계속 힘써 빛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즉, 지성을 뛰어넘는 신적 지혜와 능력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신구약 모두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사건들의 분류나 사실이나 통계 같은 것들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숨겨진 지혜가 있다. 성령께서는 이 ‘창조되지 않은, 무시간적(無時間的) 지혜의 바다’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으신다.



이 지혜는 때로 성부 하나님으로, 때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때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여 보내신 것으로, 때로는 성문에 서서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잠 8:5)라고 소리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지혜는 단순히 불타는 지성이 아니다. 영원한 지혜와 불타는 지성은 너무나 다르다.


성 니케포루스(St. Nikephoros)는 “머리는 마음과 연합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진다. 그때 우리는 하늘나라가 진정으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되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라고 말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단절(분리)이 일어났다. 즉, 인간의 머리가 그의 마음에서 분리되었다.

이렇게 분리된 머리와 마음은 속량을 통해 다시 연합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지만, 죄인은 아무리 배운 것이 많아도 오직 머리로만 생각한다.


사실을 말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인은 이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사고할 수 있다

그는 그의 머리를 마음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간절한 소원과 강한 의지를 갖고 그렇게 한다면 매우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것이고, 사랑과 기쁨과 평안 같은 온갖 미덕들을 갖추게 될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에 늘 응답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부어주기 원하시는 이 불가사의하면서도 아름답고 인자하고 사랑스럽고 자비롭고 순수한 것, 즉 이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와 대조된다.


하나님의 지혜는 신비이다. 즉, 그분이 창세 전에 그분의 영광을 위해 미리 정하신 ‘감추어진 지혜’이다. 이 지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내 개인적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나는 단순히 신학자로 머무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신학은 제단 위에 놓인 나무일 뿐이다. 엘리야는 산 위에서 나무를 자르고 제단을 만들었다. 그 후 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제단 위의 나무를 태웠다. 모든 것을 태운 그 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바알이 패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무에 불이 붙지 않는다면
나무는 그냥 나무일 뿐이다.

신학은 제사를 위한 나무이다. 나무에 불이 붙지 않는다면 나무는 그냥 나무일 뿐이다. 1,2킬로그램의 나무는 아무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단지 나무 더미만 보았다면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출 3:3)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그 나무에 불이 떨어졌을 때 온전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당신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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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당신의 지혜가 나를 만드셨습니다.
내 조물주에게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당신의 불가사의한 일들에
놀랐기 때문입니다.

_ 예배용 시편집 (The Psalter, 1912)

<나의 나 된 것은>


3.오늘의 기도


하나님, 죄인처럼 머리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며, 제 이해력을 버리고 당신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제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또 제 주변으로 흘러나감으로 당신의 영광을 전하는 그릇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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