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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238
2019.03.12 (19:38:43)

1.오늘의 말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 4장 2절)


2.묵상하기


우리가 말씀을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개독교’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살아냅시다.”

많이 들어본 말일 것이다.

우리가 정결함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래도 싸다. 하지만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단지 크리스천들이 세상으로부터 무조건 칭찬만 받아야 하는 것을 의미할까? 과연 그것이 성경의 핵심 사상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크리스천 일부의 모습이지 핵심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직이나 정결함, 청지기적 삶, 구제, 관용, 용서, 긍휼, 오래 참음, 자기 비움 등 다른 모든 선한 삶의 모습은 예수님과 상관없이도 세상이 흉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을 위해 죽는 삶까지도 다른 종교와 철학에 다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미혹의 영이 강하게 기승을 부리는 지금, “오직 예수!”를 외치면서도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성을 강조하지 않는 유사품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는 차원에서 ‘말씀대로 사는 삶’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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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십자가의 처형은 로마법 차원과 종교법 차원에서 모두 최고의 저주의 자리였다. “그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은 한 사람,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구주시다!”라는 유일성을 선포하는 모습만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다. 그것은 세상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수 있기에…

세상은 우리에게 “2천 년 전 저주의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한 사람 예수가 어찌 유일한 내 창조주 하나님이며 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단단히 미쳤군!”이라며 우리를 바보 취급한다. 그런데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는 것에 굴복하지 않고 항상 유일한 복음을 전하게 마련이다. 오늘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한 영혼이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채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면 영원한 심판으로 직행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 팽배해 있는 교묘한 인본주의적 사상들을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거리 전도와 외침 전도 같은 모습을 전근대적이고 미련한 전도의 방법이라고 하는데, 그 주장은 인본주의 사상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저주스러운 자리에서 죽은 한 사람이 어찌 모든 인류,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창조주요 주인이란 말인가?’라며 합리적 이성을 들이댄다. 그래서 교회의 탈을 쓴 자들이 전하는 인본주의적 가짜 복음 속에는 그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전도’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도의 본질은 선포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1장 38절에서 쓰신 ‘전도’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케륏소’인데, 그 뜻은 ‘선포하다’이다. 성경은 미련한 전도의 방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도 자체가 미련한 것이라고 했다. 바울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1-24).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비롯해 교회사 속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세상에게 칭찬받을 만한 모습으로만 살았다면 순교 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들이 순교하게 된 이유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바로 위에서 말한 유일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 주신 교훈들의 핵심도 바로 순교적 삶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원어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서 ‘심령이 가난한 자’를 다시 표현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떠는 자(terrify)’이다. 이 표현 속에는 모든 인류를 향한 공의의 심판이 이루어진 십자가 앞에서 두려워 떨며 진정한 회개를 시작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한 자는 자신의 죄로 인해 애통하는 회개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마 5:3,4). 그리고 그 유일한 구원의 축복을 받은 자는 핍박받는 삶을 살게 된다고 예수님이 강조하셨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핵심이다(마 5:10-12).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 모습에 대해 산상수훈이 결론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말할 때 조심해야 한다. 의를 위해 핍박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욕먹는 삶을 핵심으로 강조하지 않는 산상수훈의 강조는,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누락시킨 것이다. 그 핵심을 빼버린다면 아무리 성경을 인용한다 해도, 성경의 인물들을 예로 든다 해도 다른 인본주의 종교나 철학 사상에서도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는 차원에서의 강조와 다를 바 없다.


참된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산상수훈 속의 윤리적 삶들을 부단히 살아내면서도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떨었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유일한 복음을 외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성령을 좇아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죄라고 담대히 말하고, 의와 심판을 전하며, 세상을 책망했기 때문에 순교를 당했다(요 16:7,8).

나는 전도의 현장에서 다른 세계관들을 가진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면서 유일한 복음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한 사람, 예수만이 유일하신 창조주시요 구원자시며 인생의 주인이시다”라는 표현은 어떤 종교나 철학, 윤리, 도덕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전도의 현장에서 이단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 물었는데,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통교회에 다녔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실망해서 교회에 다니지 않다가 이웃 사람이 말없이 생명까지 내어줄 정도의 사랑을 베푸는 모습에 큰 감동을 느끼고 반해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한 행동이 그리스도인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절대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 다른 모든 종교나 철학, 윤리, 도덕, 신념도 얼마든지 선한 모습을 나타낸다. 오히려 이단 사이비들이 더 선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선한 행동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강조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의로운 삶의 핵심, 즉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만이 의로운 분이시다”라는 유일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의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그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미련하다는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 육체에 채울 수 있어야 한다(골 1:24).


3.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으로부터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 이전에 먼저 말씀으로 살아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유일성을 선포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을 사는 주의 자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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