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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23:19:02)

1.오늘의 말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편 4절)


2.묵상하기


모세는 늘 더 원했다.


이 땅에서 모세만큼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일부터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본 것까지, 모세는 하나님을 많이 보았다. 사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후, 하나님은 그분의 임재와 관련해 모세에게 특권이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홍해를 건너고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한 후 하나님은 시내산 꼭대기의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만나주셨다. 하나님은 산꼭대기에 내려오시기 전, 누구도 그 산 위에 단 한 발짝도 들여놓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다. 이를 어기면 죽을 것이었다.

모세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이 특별한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나이트클럽처럼, 하나님은 차단기둥에서 줄을 벗기고 모세에게 자신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곳은 VIP 영역이었다.


짙은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었다. 백성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속으로 들어가 산에서 하나님과 시간을 보냈다. 모세는 당신과 내가 상상도 못 할 수준과 강도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경험할수록 하나님을 더 원했다. 많을수록 더 원한다.


출애굽기 33장은 나의 어린 조카 메이슨처럼 좋은 것을 더 원하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몇몇 지시사항을 다 주셨을 때, 모세는 특별하고 대담한 요청을 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뭐라고? 모세는 충분히 보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다양하게 계시되지 않았는가? 모세는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기교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거슬러 바닷물이 벽을 이루고 늘 젖어 있던 바닥이 말라 콘크리트 같게 하신 일은 어떤가? 이 정도의 영광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는가?


모세는 시내산 꼭대기를 덮은 어둡고 빽빽한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 어떤 인간도 이른 적이 없는 하나님의 공간에 들어가 사람이 사람과 말하듯 하나님과 얘기했다. 일반적 임재와 관계적 임재를 넘어 가시적 임재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경험을 했으니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보지 않았는가? 그러나 분명히, 아니었다.


이것이 모세의 원리이다. 많을수록 더 원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모세의 영혼을 공중으로 더 높이 던졌고, 모세는 그래도 더 높이 던져지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가까움이 모세의 마음을 간지럽혔고, 모세는 더 깊이 웃기를 원했다. 모세는 하나님을 알수록 하나님을 더 원했다. 이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갈망한다.

살면서 하나님을 알수록 그분을 더 알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발견의 기쁨과 깊이가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신과 하나님 간의 큰 거리를 느낀 적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마치 VIP 영역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은 것처럼 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반대로 거리감을 벌로 해석한다. 우리는 항상 부재를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부재를 느끼는 능력은, 사실은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단서일 것이다. 부재가 항상 저주인 것은 아니며, 때로 단서가 된다.


나는 직업상 여행을 많이 해서 아내와 떨어져 있을 때가 많다.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내는 “나 보고 싶었어요?”라고 늘 같은 질문을 한다. 아내는 내가 자신의 부재를 느꼈는지, 내가 자신의 임재를 갈망했는지, 우리 사이의 거리를 내가 어떤 식으로든 견딜 수 없어 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물론 나는 늘 “미치도록 보고 싶었지!”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은 이것이 전적으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떠나 있을 때 아내가 보고 싶다. 그만큼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를 사랑할수록 우리가 서로에게 부재할 때 나는 아내가 더 보고 싶다. 아내를 그토록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내가 그토록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내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내가 전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내가 보고 싶었어요?”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이것은 “여전히 날 사랑해요?”라는 질문과 같은 뜻이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그분과 함께하기를 더 갈망한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이미 받은 것보다 더 원한다는 것이다. 설령 그 임재가 웅장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속에서 천둥소리 같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 더할 나위 없는 것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더 원한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를 갈망하듯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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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멀게 느껴진다면 그 부재를 통해 그분이 “그래,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다. 부재는 당신이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느껴진다면,
거기서 끝나면 안 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거리가 당신이 죄 때문에 관계에서 벌을 받는 식으로 하나님께 멀어져 있다는 뜻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당신은 이 땅에서 그분을 떠나 여행하면서 그분이 그리운 것이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부재를 느끼는 것은 당신에게 열정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당신이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사랑한다는 확신이 아닐까?


3.오늘의 기도


하나님, 늘 제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더 함께하고 싶고 더 알아가기 원하는 마음이요. 그러다 정체기가 오고 방황하는 시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 깊숙이에는 늘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과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을 더 깊이 알기 원하며, 임재 안에 잠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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