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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2 (22:12:17)

1.오늘의 말씀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세아 11장 7-9절)


2.묵상하기


한 가지 물어볼게요. 하나님은 얼마나 당신 곁에 가까이 계시나요?


음… 전, 하나님을 사랑해요. 자주 그분을 생각해요.

그럼 하나님과 당신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50미터? 100미터?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아주 많이 사랑해요.


사랑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가까이 있고 싶어 하지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아서 어렵겠지만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에 비추어봐요. 거리로 말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한 200미터? 아니, 100미터?

다행이군요. 별로 멀지 않아서 언제든 큰 소리로 부를 수 있겠어요. 보고 싶으면 바로 달려가서 만날 수도 있고요. 한 가지 더 묻겠어요. 당신이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을 두고 생각해봐요. 밤이면 잠 못 이룰 정도로 보고 싶던 사람이 갑자기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어. 우린 헤어져야 해. 연락하지 마”하고 훌쩍 떠나면 어떨 것 같아요?
가슴이 찢어질 거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럼 그와의 거리를 굳이 잰다면 얼마나 될까요? 내 가슴처럼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음… 그럴 수도 있고요.

좋아요. 그럼 당신과 하나님이 어떤 일로 인해 잠시 헤어질 수밖에 없다면 가슴이 찢기는 것 같을까요?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거리가 1킬로미터, 10킬로미터, 때로는 100킬로미터까지 점점 멀어져 갈 때 그 거리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챌 수나 있을까요? 이제 대화로 풀어가는 말씀기도를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강조하는지 이해가 되나요?


성경 전체를 따라가며 때때로 멈춰 서서 주님께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직하게 나눌 때, 사랑과 진리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인격체로 다가올 거예요. 그러다가 하나님과의 간격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당신은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무엇인지, 부활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 무엇인지 체험할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와 그분의 간격은 어떤가?

 예레미야는 ‘그리스도 예수’를 만났고, 수가성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예레미야는 심판주 하나님이 오늘 내 일상으로 오실 예수님임을 기억했다. 반면에 수가성 여인은 오늘 자신의 삶에 가까이 다가온 누군가가 구원자 하나님임을 깨달았다. 둘 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하나님께 무척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 여기서 당신이 부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주님과의 심정적 간격이 1미터 이내로 좁혀지지 않아서가 아닌가 생각해보라.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일하는 성화의 삶이 시작되지 않는 이유가 그분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가 아닌가? 짝사랑으로 인해 심한 아픔과 환난을 겪으신 하나님은 심장보다 가까이 우리 곁에 계시길 원하셨고, 또한 이미 와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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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외엔 누구에게도 네 마음 열지 마라.
나 외에 어떤 이도 네 품에 품지 마라.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열정은 죽기까지 세차구나.
한순간 갑자기 터진 불꽃, 온 누리를 삼키듯.
아 8:6, 저자 역


주님만 저를 다스리소서!
제 마음을 받으소서!

NKJV와 개역개정에서 열정(Passion)은 질투(Jealousy)로 번역되었다. 질투의 불길은 온 들판을 불태워버리는 것과 같이 맹렬하다. 내 사랑을 빼앗아간 사람을 죽여버리거나 차라리 내가 죽고 싶다.

이 마음이 “열정은 죽기까지 세차구나”(Passion is as strong as death itself)라는 말에 고스란히 담겼다. 뼈아픈 질투심에 사로잡혀본 이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너무나 아름답고 선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무언가로 인해 빼앗길 때, 비천한 우리가 마땅히 느껴야 할 강렬한 고통은 성경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우상에게 한눈팔 때 오히려 존귀하신 하나님이 불같이 질투하신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신 5:9

사람 사이의 사랑과 하나님과의 사랑은 왜 이토록 거꾸로인가? 비천한 내가 주제 파악을 못하고 되레 한눈팔기 바쁘다. 하나님이 떠나시든 말든 참으로 무심하다. 그런데 존귀하신 하나님은 행여 내가 날아갈까, 꺼질까 염려하신다. 당신의 질투로 심히 아파하신다.


사랑하는 이를 뺏긴 불같은 고통을 겪으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보다 더한 불길이 이를 삼킨다. 긍휼의 불길이다. 사랑은 사랑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이길 수 없으시다. 그분의 긍휼이 질투를 이긴다. 자식을 진정 사랑하는 부모라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주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음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가서
건포도를 넣은 빵을 좋아하더라도,
나 주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호 3:1


호세아는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를 따라갔다가 버림받아 노예시장에 팔린 아내를 돈과 곡식으로 다시 사들인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짝사랑하신다. 그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계신가? 1미터, 1센티미터? 아니면 심장보다 더 가까이? 스스로 답을 찾기 바란다.


3.오늘의 기도


저를 지금까지 짝사랑하신 주님, 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저 한눈 팔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씀기도를 통해 성경 전체를 따라가며 주님의 생각과 감정을 정직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간격이 좁혀지고 좁혀져 어느 순간 사라지고 부활의 삶을 이 땅에서 경험하고 싶습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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