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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71
2019.08.28 (12:43:51)

1.오늘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2편 11절)


2.묵상하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의식 속에서 그 모든 요소들은 결국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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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통의 순간이나 위험이 닥칠 때, 또는 처벌이나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수많은 두려움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권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결코 어떤 위험이나 처벌에 의해 유발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위대한 파버(Faber)가 기록한 대로 ‘깜짝 놀라는 경외심’이다.

나는 그것이 기본 요소,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가책을 느끼는 영혼의 두려움에서부터 예배하는 성도가 매료되는 황홀감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할 거라고 말하겠다. 우리의 삶 속에 완전무결한 것은 거의 없으나, 사랑과 매혹과 놀라움과 감탄과 헌신과 결합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인간의 영혼이 알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상태이며 가장 정결케 하는 감정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교회에 이 경건한 두려움의 강력한 느낌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것의 부재는 전조이자 징후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 머물렀던 구름처럼 우리 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부드럽고 보이지 않는 덮개처럼 우리를 덮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인 삶을 길들이는 강력한 힘이어야 한다. 모든 성경 본문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주간의 모든 날을 거룩한 날로 만들고, 우리가 밟는 모든 곳을 거룩한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

진짜 하나님을 예배할 때,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계속 떨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영적인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임재에 의해서만 생길 수 있다.

오순절날 성령이 오셨을 때 모든 사람에게 큰 두려움이 임했으나 그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랑 안에서 온전케 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사도 요한을 예로 들어보자. 예수님이 동산에서 체포되셨을 때 요한은 도망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아마도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 처벌에 대한 두려움, 굴욕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이유로 밧모섬에 유배되었고, 금 촛대 가운데 서 있는 놀라운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흰 옷을 입고 금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발은 광낸 구리 같았고, 그의 입에선 검이 나왔다. 그의 머리카락은 눈처럼 희었고,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경외심과 매혹과 두려움이 갑자기 요한의 존재 안에 완전히 집중되어 그는 무의식적으로 땅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거룩한 제사장이 다가와 요한을 일으켜주었으며 그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주셨다. 그분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제 요한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위협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곧 경건한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었고, 요한은 그것을 느꼈다.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존재는 경건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일으키는데, 오늘날에는 이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부드러운 오르간 음악과 아름답게 디자인된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빛으로는 그것을 일으킬 수 없다. 떡을 집어 들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경외심을 일으킬 수 없다. 어떤 주술로도 그것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런 이교도 의식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미신적인 두려움의 유인책에 불과하다.


진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예배이고, 사랑이며, 숭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것은 고귀한 도덕적 행복이다. 그 기쁨이 너무나도 크기에, 만약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예배자 또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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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지금처럼 계속 계셔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를 죽여주옵소서!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애정이 옮겨간다는 개념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의미이다.


예배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가? 우리는 성전에서 찢어진 장막을 꿰매어 붙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예배를 유도하기 위해 인공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틀림없이 지옥에서 마귀가 웃고 있고, 하나님이 슬퍼하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바로 우리의 눈앞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3.오늘의 기도


주님, 고통과 위험, 어려움 앞에 두려움으로 떨었던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온전히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만 두려움으로 떨게 하소서. 그 거룩한 두려움 앞에 예배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진리와 영으로 예배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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