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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822
2019.10.21 (19:14:06)

1.오늘의 말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 (말라기 4장 2절)


2.묵상하기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발표됐는데, 나라를 빼앗기고 온 나라가 암울했던 상황에서 쓰인 시이다. 이 시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나라를 빼앗긴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나 해방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사라지고 이대로 일본의 식민지로 정착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절망감이 깊이 드리워지던 현실을 담아낸 시라고 한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는 자조로 끝나는 이 시는 ‘조국 상실’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인식을 아픈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빼앗긴 나라를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되새기며 읽어야 한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다니엘서 1장을 읽는 우리의 마음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과 함께 참담한 마음으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낙심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다니엘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 중 하나는, 젊은이들을 세상에 포로로 잡혀가게 만든 것이다.

다니엘서 1장 3,4절의 상황을 보라.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 단 1:3,4

유능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다 잡혀갔다. 가슴 아픈 일 아닌가?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 겪었을 수모를 생각하다 보니, 시편 137편이 떠올랐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 시 137:1,3

요즘 우리로 치면, 예수 잘 믿는 청소년이 술자리에 끌려가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야, 너 교회에서 배운 노래 한번 불러봐라. 그 하나님 노래 있잖아?” 하는 수모를 당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유능하고 똑똑한 아이들을 이런 비참한 포로로 끌려가게 만든 자들이 누구인가? 타락한 기성세대들이다. 지도자 여호야김 왕을 비롯하여 타락하고 변질되어 무기력한 자리에 빠져버린 기성세대들 때문에 죄 없는 젊은이들이 포로로 끌려가 수모를 당하는 자리에 빠져버렸다.


문제는, 오늘 우리 시대에도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크리스천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자기가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젊은 크리스천들 입장에서 교회 다니는 것이 창피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끄럽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누가 교회를 이렇게 부끄러운 공동체로 전락시켜버렸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가치관에 절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 크리스천들 때문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내몰리고 있는 영적 바벨론의 특징이 무엇인가?

우선 ‘일등주의’를 꼽을 수 있다. 포로로 잡아가도 똑똑한 아이들 위주로 잡아갔다. 오늘날 우리도 여기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타락한 세상의 특징이라는 잘못된 ‘일등주의’가 교회 안에까지 스며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탐욕’이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인들이 탐심에서 자유롭기는커녕 오히려 더 욕심 많고 더 탐욕적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 현실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영적 바벨론의 또 다른 특징은 ‘성적인 타락’을 들 수 있다.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인터넷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란 동영상이 그들로 하여금 성적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만든 흉기가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어린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 음란 동영상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돈만 된다면 그것이 악영향을 끼치든 말든 그런 자극적인 동영상으로 도배하는, 이런 썩어빠진 바벨론 사회가 그런 아이들을 양산한 것은 아닌가?

성령하나님,
성경 말씀으로 우리를 고쳐주소서

그런데 이렇게 암담한 현실만 생각하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쪽 면만 보는 것이다. 도저히 해방될 것 같지 않은 절망을 안고 그 시를 지은 것 같지만 동시에 빼앗긴 들을 반드시 되찾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의가 그 시에 담긴 것처럼, 우리도 다니엘서를 묵상할 때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현실을 보며 낙심만 할 것이 아니라 회복에 대한 꿈을 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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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부끄러운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회복은 가능하다! 하나님나라가 반드시 회복될 것을 믿는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불쑥 떠오른 말씀이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영화 〈암살〉이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에 나오는 독립군을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는 무엇이었는가?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력, 그 일에 헌신하리라는 희생정신이 그들의 동력이었다면, 다니엘이나 우리의 동력은 조금 다르다.

우리의 동력은 내 안에서 솟구치는 숭고한 희생정신이나 의지력이 아니라 이 말씀의 하나님, 그리고 그분이 주신 약속이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 평안이요 …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이 마음이 다니엘서에 가득 담겨 있지 않은가? 포로로 끌려간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동력인 것이다.


제레미 테일러는 “도우시는 분이 전능자임을 기억한다면 사람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라고 했고, 앤드류 머레이는 “철저히 절망하고 오로지 주님 안에 있는 소망을 발견하는 순간 구원이 시작된다”라고 했다. 톨스토이는 이 모든 명언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이고,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인간이 저지른 죄악으로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울고 있는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


3.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안의 탐욕과 타락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합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를 회복시키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자리에 있지만 온전히 다시 일어날 희망을 갖는 것은 주님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여전히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그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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